2018 마리끌레르 10월호 <도경수의 서사> 인터뷰
CATEGORY ─ 2018/07-12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 첫 회가 방영된 지 15시간 만이었다. 그의 첫 주연 드라마가 TvN 월화드라마 사상 첫 회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던 차에 체크 셔츠에 면바지를 입은 청년이 기척 없이 스튜디오로 들어섰다. 동행한 스태프가 없었다면 알아채지 못했을, 인상적일 만큼 수더분한 세자 저하의 등장이었지만 더 인상적인 건 무던한 공기 속 그가 배우로서 지닌 선명한 얼굴이었다.


2014년 영화 <카트>로 시작되는 필모그래피를 되짚어보면 도경수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빛과 환호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배우로서 의식적으로 현실에 발을 붙이려는 사람같다. 마트 비정규직 직원의 10대 아들(<카트> 2014), 시력을 잃은 국가대표 유도 선수(<형> 2016), 어떻게든 1천8백만원의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는 DVD방 알바생(<7호실> 2017), 유약한 군인(<신과 함께> 2017)이 돼 그는 난처하고 비루한 삶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낯선 세계에서 평균 이상의, 혹은 모두가 동의할 만한 좋은 연기로 배우로서 재능과 가능성을 증명해왔다. 부단히 장르와 캐릭터의 결을 달리해왔던 그 축적된 변화가 이제 수면 위로 올라오는 중이다. 올겨울 개봉할 영화 <스윙키즈>에서는 당찬 북한군 포로 로‘ 기수’가 돼 그 안에서 한껏 자유로울 테니까.


그의 담백한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도경수는 ‘연기가 좋다’. 목소리와 말의 높낮이, 중간중간 흐려지다가도 똑 떨어지는 대답, 웃음 사이사이에서 그가 거듭 내비치는 좋‘ 음’이 그저 습관처럼 만들어진 감정이 아님을 알았다. 아래 이어지는 인터뷰에는 신중하고도 낮은 목소리로 ‘좋다’는 말이 열한 번 나온다. (날것의 대화를 풀어놓은 녹취 파일에는 스물네 번 쓰였다.) 좋아서 하는 사람의 연기는 보는 사람마저도 좋아하게 만들어버리는 힘이 있다. 그 건강한 서사를 동시대에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오늘 아침 <백일의 낭군님>의 첫 회 시청률을 들었겠다. 자고 있다가 전화 받았다.(웃음) 축하도 많이 받고 기분 좋다.


첫 드라마 주연이다. 비중의 경중을 떠나 현장에서 책임감도 경험했을 것 같다. 이번 작품 하면서 책임감을 더 느끼게 된 것 같다. 대본도 볼 만큼 많이 봤는데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대본을 열 봤다면 열 번으로는 택도 없겠구나 싶을 만큼. 드라마는 장르 특성상 이야기가 길기도 하고, 극 중 시간의 흐름대로 촬영하는 건 아니어서 이전 상황이 뭐였을까 떠올려 보기도 하고, 종종 헷갈리기도 한다. 그 속에서 내가 대본을 말도 안 되게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년 사이 영화 <스윙키즈>와 <신과 함께 2>, 애니메이션 <언더독>, 여기에 더해 드라마에 공연까지 했다. 도경수라는 사람이 시간과 체력을 어떻게 나눠 쓰고 있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아마 몇 년 전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이제 엑소가 데뷔 7년 차에 접어들었고, 노하우가 점점 생기는 것 같다. 공연 준비나 안무 연습을 이전보다는 빠르게 습득할 수 있게 됐으니까 거기서 시간 배분을 잘하려고 한다.


혹자는 긴 호흡을 가지고 때로 쉬기도 하며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도경수의 필모그래피는 오늘만 사는 듯, 최선을 다하겠다는 듯 보인다. 어떻게 생각하면 다 지나가는 것이지만 ‘지금’이야말로 정말 중요한 시간이니까. 그러니 항상 최선을 다해서···. 나는 그렇다. 누구를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마음이 강하고, 또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있다. 물론 내 욕심도 있기 때문에 그걸 채워가려고 많이 노력하는 것 같다.


자기만족에서 동력이 만들어지는 편인가? 확실히 그렇다. 물론 보여주는 직업이고 대중의 만족이 항상 중요하지만, 나 자체의 기준도 높다. 결국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 내가 먼저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관객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한다.


올겨울 개봉할 영화 <스윙키즈>는 춤과 음악을 보여주는 경쾌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1951년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부분을 담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 영화 <카트>와 <7호실> 역시 그랬고. 배우로서 사회의 한 조각에 대해 이야기 해왔다. 사람 냄새 나는 작품을 좋아해서일 수도 있지만 선택 과정에서 시기가 잘 맞았던 것 같다. 극 중 시대와 사회적 배경은 달라도 많은 사람과 작품으로 공감하고, 또 누군가 내 연기로 지친 마음에 힘을 얻는다면, 그러면 정말 좋을 것 같다.





학자금 대출에 시달는 청년이건 관심 사병이건 도경수가 연기하는 삶은 대체로 녹록지 않다. 약자를 대변하는 건 어떤 면에서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그 부분에서 주저하거나 겁내지 않는 것 같다. 전혀. 겁낼 일은 아니지 않나. 되레 내가 그걸 할 수 있는 상황이 감사하고 너무 좋은 일이다. 그 점에서도 배우는 참 좋은 직업이다.


영화 <스윙키즈>를 준비하면서 탭댄스를 익혔을 텐데 어렵지 않았나? 엄청 어려웠다. 탭댄스는 춤이 아니라 악기를 배운다고 생각하며 접근해야 하더라. 몸을 써서 크게 보이도록 하는 점도 있지만 드럼을 치듯 발을 굴러 소리를 내는 원리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쉽지 않다. 늘 몸을 써왔는데도 처음에는 내가 몸치처럼 느껴졌다. 스스로 리듬을 만들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소리를 들을 때 쾌감이 있다.


배우의 장점 중 하나는 작품을 하며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거다. 지금도 가만히 있을 때는 발을 움직인다. 그런 게 너무 좋다. 작품을 하면서 나만의 장점이나 무기를 얻을 수 있는 거니까.


장르와 캐릭터의 결을 꾸준히 달리해왔다.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어 하는 타입인가? 정확하다. 이전에 마음에 상처가 있는 캐릭터나 어리게 보일 수 있는 캐릭터를 해왔다면 캐릭터도 점차 성숙하고 변하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며 사람이 변하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만나는 캐릭터의 성향도 달라지는 것 같다. 그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영화 <스윙키즈>의 주인공 ‘로기수’야말로 남자답고 호기로운 청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굉장하다. (웃음) 지금까지 연기한 인물 중 가장 남자다운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지금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호기로운 캐릭터의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당차고 한편으론 사고뭉치에 악동 같기도 하지만 정의로운 사람. 그래서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다.


도경수 하면 떠오르는 반듯하고 점잖은 이미지를, 그 틀을 한번 깨고 싶어 한 선택인가? 근데 내가 그렇게 점잖지만은 않다. 가까운 사람들은 알겠지만 장난도 많이 친다. 로기수라는 캐릭터에도 그런 면이 많이 담긴다. 내가 못 보여드렸던 모습들을. 방송에서는 어떻게 까불고…(웃음) 그럴 수 없기도 했는데 단체 생활하다 보면 다른 멤버가 맡아서 잘 해주는 부분도 있으니까 오히

려 가만히 있게 되고 그래서 그런 이미지가….


자유분방한 캐릭터 안에서 인간 도경수도 자유를 느꼈을 것 같다. 그런 부분이 참 좋은 거 같다. 연기라는 것이. 평소 하지 않고, 해보지 않을 것을 그 안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까. 너무나 큰 장점이다.


해보고 싶은 게 많이 쌓여 있는 건가? 쌓여 있다기보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내 모습을 새삼 알게 되는 것 같다. ‘이 캐릭터가 이런 대사를 할 때 마음이 이렇겠구나’ 하면서 헤아리다가도, ‘근데 나는 여기서 이렇게도 할 텐데’ 하며 나를 다시 본다. 연기를 하면서 스스로 발견하지 못했던 내 모습, 그동안 상상하지 않았던 나의 어떤 면이 나오는 것 같다.


몰입했던 캐릭터의 결에 따라 일상의 도경수도 달라지나? 평소의 나는 나고, 연기하는 현장에서는 캐릭터에 최대한 몰입하려고 노력한다. 캐릭터의 차이보다는 시차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 같긴 하다. 한 작품에 몰입하다 보면 생활 패턴이 완전히 뒤바뀌니까 작품이 끝나면 얼떨떨하기도 하다. 드라마 촬영하는 동안 일찍 일어나 시작하고, 또 늦게 끝나기도 하니까 모든 촬영이 끝났는데도 4시간 자면 반사적으로 눈이 떠졌다. 막상 깨서 덩그러니 있으면 좀 어색하더라. 대본을 읽고 뭐라도 외워야 할 것 같고, 문경으로 가야 할 것만 같고.(웃음) 지금은 그때보다는 잠을 더 자는 편이지만 확실히 부지런해졌다.


연기를 하기 전의 도경수, 연기를 하고 난 뒤의 도경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감독님과 스태프, 배우 분들 등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고 영향을 받으면서 사회적으로 한 단계 올라가는 것 같다. 어른스러워진다고 할까. 연기를 떠나 그게 가장 많이 달라진 점 같다. 연기를 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였다면, 작품을 하나씩 지나오면서 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보며 성숙하는 것 같다.


사회화된다고 할까? 근데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웃음) 드라마나 영화 현장이 다른 일에 비해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르니까. 가수로 활동할 때는 멤버들과 매니저 형들이 늘 함께하지만 연기하는 현장은 감독님, 배우 분들 할 것 없이 매번 스태프가 다르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태도가 많이 달라진다.


배우로 지금의 자리에 온 데는 본인의 어떤 면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나? 내 이야기를 잘 안 하는 편이다. 힘들어도 힘들다 안 하고, 혼자 누른다. 이런 성격이 때로 괴롭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장점으로 작용한 때가 많았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도 마찬가지다. 그런 성격이 도움이 된 것 같다. 남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해서.


한데 그 성격이 나를 힘들게 하고 외롭게 할 때가 있지 않나.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는 몸이 두 번 움직여야 하는 상황도 감내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바에는 그게 낫다. 그래서 스스로 훈련을 더 많이 하는 것 같고. 설사 몸을 두 번 움직이는 과정에서 내가 스트레스를 더 받았다 할지라도 결국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 누군가에게는 배려가 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게 좋고, 옳은 일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좋고 옳지만 동시에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부모님의 영향이 큰 것 같다. 힘든 순간이 있어도 자식들에게 얘기하거나 내색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많은 부모님이 그러시겠지만. 가까이 보면서 자연스럽게 배운 것 같다.


작품을 떠나 있을 때 도경수의 평균 마음 상태가 궁금하다. 대체로 평온하다. 스트레스 받는 상황도 있지만 되도록 빨리 잊으려고 한다. 무엇보다 ‘내가 불안을 느끼는’ 상황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연습하는 것 같다. 항상.


앞으로 어떤 역할이 오면 단번에 하게 될 것 같나? 지금까지 이런 걸 하고 싶다거나 해야겠다고 정한 건 아니고 작품을 좋은 시기에 만났다. 영화 <7호실>의 ‘태정’이 같은 경우는 시나리오 읽으면서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지금까지 캐릭터들이 때맞춰 내게 왔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은 욕심낸다고 되는 게 아니기도 하고, 그래서 내 작품은 운명처럼 정해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좋은 시기에 때맞춰 찾아온 작품이라면 그리고 나 역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크게 계산하지 않고 하는 것 같다.


직관적으로 선택해온 셈이다. 시나리오를 다 읽은 뒤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 결국 내가 하는 일이고,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는 현장에서 감독님과 스태프들 그리고 내가 함께 풀어야 하는 거니까.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상의하는 분들이 있지만 마지막은 내 생각을 따른다. 지금까지 작품들이 모두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이건 할 수밖에 없구나 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니 다음 작품 을에 어떤 캐릭터를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


배우의 자리에서 이제는 조금씩 여유가 생기는 듯하다. 작품을 고르는 범위가 넓어지고, 내 경험치가 커지면서 또 나를 더 알아가고 있다. 같은 캐릭터라 해도 이전에는 ‘아, 너무 어렵겠다’ 했다면 이제는 ‘지금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재미있게 할 수도 있겠다’고 가늠해보는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도경수의 서사 배우 도경수는 연기 안에서 누구든 될 수 있다. 

그가 만끽하는 최대치의 자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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